작성일: 20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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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루이스 메넌드
출판사: 바이북스
출간일: 2013년 12월 1일


인문학 생존의 위기와 현대 고등교육의 몇 가지 문제점을 조명한다. 19세기 하버드부터 근대 미국의 대학 시스템(주로 인문학)이 발전해 온 시대 배경과, 그리고 특히 학제성과 간학제성이란 단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이지만 그만큼 명료하고 엄격하고 필체가 우아해서 잘 읽힌다. 왜 인문학이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가? 왜 교수와 학자들은 학제간 연구를 선호하는가?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초기 인문과학 분야를 둘러싼 논쟁을 떠올리게 하며 이러한 논쟁을 다루는 시의적절한 역사서, 또 한 편으로는 선언서라는 평이다.


고등교육에서 대부분의 개혁의 핵심은 지식이 생산되는 방식에 있지 않다. 바로 지식의 생산자들이 생산되는 방식에 달려있다.

미국 고등교육의 규모, 임무, 지지층에 변화가 있었음에도 전문직 종사자의 재생산은 100년 전과 거의 똑같이 유지되고 있다.

항상 기억해야 할 불멸의 격언이 있다. "쓰레기는 쓰레기다. 그러나 쓰레기의 역사는 학문이다." 회계학은 일종의 장사다. 그러나 회계학의 역사는 사심 없는 탐구 주제, 다시 말해 인문과학 분야에 속한다. 또한 회계학의 역사를 아는 회계사들은 더 훌륭한 회계사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지식은 시장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 이는 교양교육이 창출할 수 있는 잠재적 부가가치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교양교육이 전파하는 역사적, 이론적 지식은 현재 제도가 가지고 있는 우연성을 폭로하는 지식이다. 그 지식은 현재의 가정에 묻힌 원형을 밝히고, 학생들에게 배후 세력을 드러낸다. 살짝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보는 것이다. 또한 이 지식은 학생들이 혼자 힘으로 사고하도록 격려한다.

21세기 고등교육에서 '간학제성 interdisciplinarity'보다 큰 잡음을 일으키는 요소를 지니는 단어는 없다. 간학제성이란 여러 학문 분야의 방법론과 자료를 통합한 교육과 학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누구도 또는 거의 대부분 간학제성이라는 말에 토를 달려고 하지 않는다. 교수와 학장 모두 간학제성이라는 단어에 같은 열정을 보인다.

간학제성에 대한 논의에서 교수들이 논하고 있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이 진정한 간학제성이라 할 수 있는가? 교수들이 관심을 두는 대상이 엄밀한 의미에서 간학제성이라 할 수 있는가? ... 사람들이 간학제성을 논의할 때 정말로 간학제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의심이 생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왜 간학제성이 중요한지 질문을 던지면 그것이 학제성의 문제점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대답이다. 간학제성이 학제성보다 더 높은 권한을 갖고 있기는 해도 이 역시 학제성일 뿐이다. 학제성으로부터 탈출구가 아니라 오히려 학술적이고 교육학적인 방식으로 학제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교수들이 제거하고 싶어 하는 것이 학제성이라면, 새로운 질서를 간학제성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전문성은 모순된 충격에서 태어났다. 전문성은 한편으로는 민주사회와 자유 시장 경제를 향한 움직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재능있는 모든 이에게 직업적 기회를 약속하는 것이다. 직업을 통해 얻는 지위는 대를 이어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응시생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자격증 수여 과정을 거쳐서 얻는다.

전문화는 이 밖에도 심오하면서도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전문화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개념은 전문화된 노력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전달할 수 있어도 양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달성은 전문 직업이 미래 전문직 종사자들의 생산을 독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 ... 이러한 전문성의 비양도성은 전문화된 경제 체제에서 각각의 바퀴가 평형을 이루도록 한다. 즉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도를 넘는 권위를 주장하는 것을 막는다. ... 다시 말해 전문성은 똑똑한 사람들에게 지나친 사회 권력을 주지 않으면서 그들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가장 약한 전문직 종사자라도 그룹 전체의 집단적 권위를 통해 지원받기 때문에 혼자 일하는 가장 뛰어난 비전문직 종사자, 흔히 말하는 독립적인 학자에 비해 난공불락의 우위를 갖게 된다. 비전문직 종사자는 스스로 자신의 명성을 쌓아가야 하지만 전문직 종사자는 기관에서 신뢰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학위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이고자 한다.

사실 전체 인구 중 대부분은 자신을 진보주의나 보수주의자로 밝히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론 조사에서 자기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말해놓고는 대개 보수적 입장을 취하며 특정 질문에 답한다. 또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른 뒤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이전과는 다른 답을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론가가 아니므로 일고나된 정치적 신념 체계가 없고 그래서 일관되지 않은 견해를 보인다. ... 그러나 학자들은 대개 이론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 중 10퍼센트가 자기 자신을 "급진적인 진보주의자"로 밝혔다면, 그것은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결과다.

다른 집단보다 학자들이 의미심장할 정도로 훨씬 진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다. ... 교수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도록 훈련받기 때문에 보수주의가 변화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한 교수들이 보수적 성향을 띨 가능성은 적다. ... 또한 우익 성향의 지성인들보다 좌익 성향의 지성인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는 기관은 아마도 더 적을 것이다.

자유 사회에서 학계의 임무는 대중이 묻고 싶어 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조사할 수 없거나 조사하지 않을 대상을 조사하고 그것이 실패하거나 수용하기 거부한 목소리를 수용함으로써 대중문화에 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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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10-13 10:3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