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自畵像) : 서정주 시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메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숫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껴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수캐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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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03-17 2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