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5·
2개월 전 다시 lifelog를 시작했을 무렵만 해도 예전의 '악습'으로 여겨지던 '나 자신에 대한, 혹은 나의 생각에 대한 생각과 해답없는 끝없는 회의성 물음'류의 글은 최근 눈에 띄게 줄었다. 그만큼 나에 대해 고민할 것이 줄어들었다. 사실 이는 작년 중, 후반의(7월의) '그 때'부터 많은 부분이 일소(된 것으로 보인다. 혹은 내 안의 보다 깊숙한 자아 속으로 침잠해 숨어들은 상태이던지)되기 시작한 것인데 2개월 전, 털어놓을 공간이 생기자 그간의 몇가지 단편적인 모임과 울림으로 인한 반작용에 불과했다. 결국 작년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러 지금의 내 상태는, 최근 몇 년간 나를 힘들게 괴롭혀 왔던 많은 '문제'를─특히 그 중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나에 관한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된 것─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아- 이 한 마디를 하기를 작년 언제부터 수 없이 되내여 왔던가….) 하지만 이 것이 완전한 '해결'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단순한 문제의 '은폐', '감춤', '묻어둠', '회피', '무지각'을 의미하는 '거짓 해결'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 이는 앞으로 더 지켜보며 생각해봐야 할 일들이다.
다만 한가지 확신하고 있는 건 지금의 condition이 이전의 혼란과는 다른 조금은 정리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완전한 '해결'을 의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과 다른 지금'은 지난 시간 속의 경험에서 나온 처세술에서 나온 방편에 의한 결과라는 확신이 자리잡는다. 그렇다면──
앞서 말했듯이 앞으로 더 지켜보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발전이 없는 사람'이니, 앞으로의 나도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가장 큰 소재는 내가 될 것이다.
다만 한가지 확신하고 있는 건 지금의 condition이 이전의 혼란과는 다른 조금은 정리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완전한 '해결'을 의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과 다른 지금'은 지난 시간 속의 경험에서 나온 처세술에서 나온 방편에 의한 결과라는 확신이 자리잡는다. 그렇다면──
앞서 말했듯이 앞으로 더 지켜보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발전이 없는 사람'이니, 앞으로의 나도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가장 큰 소재는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