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메

기요메
Submitted by hyacinth @
그리고 자네가 밤새도록 이야기하는 동안 피켈도, 로프도, 식량도 없이 1만 3천 5백피트나 되는 고봉을 기어오르기도 하고 영하 40도 추위 속에서 발과 무릎, 손이 터져 피를 흘리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기어오르는 자네를 보았다. 차츰차츰 피로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도 자네는 개미처럼 고집스럽게 장애물을 피해 가기도 하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어 보이는 곳을 뚫고 나가고, 눈(雪)의 침대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으나 그래도 앞으로 기어 나갔다. 자네는 넘어질 때마다 돌덩어리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서야 했지. 그러나 자네는 심한 추위를 이기지 못해 조금씩 몸이 굳어 갔다. 넘어질 때 잠시 맛보는 편안함의 대가로 다시 일어날 때면 굳어 가는 근육을 풀어야 했다.

자네는 온갖 죽음의 유혹을 뿌리쳐야만 했다.

"눈 속에서 기력을 잃으면 살고자 하는 의욕을 잃게 되네. 이틀, 사흘을 걷고 나면 오직 자고 싶은 욕구뿐이네. 그게 바램의 전부일 뿐이네. 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말했네. 내가 살아 있는 줄 알면 내 아내는 분명 걷고 있다고 생각할 거라고. 친구들도, 동료들도, 내가 걷는다고 생각하겠지. 모두가 나를 믿는데 내가 걷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을 배반하는 거야. 일어나서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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