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에 대해

아는 만큼 보인다에 대해
Submitted by hyacinth @
아는 만큼 보인다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격언이 아니라 그리 오래되지 않은 유홍준 교수의 책에서 세상에 나온 것으로부터 흔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라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마땅히 시대를 불문한 격언에 들 자격이 있다. 그러나 표현만 다를 뿐 비슷한 말은 세계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없을 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속담 우물 안 개구리도 같은 말이지 않은가. 누구에게서 만들어졌건 어찌 됐건 간에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이 표현을 아주 좋아한다.

컨텍스트
세상 모든 일들은 겉으로 드러난 일부 수치, 이야기의 작은 한 부분, 단편적인 사실들을 '텍스트(text)'로 간주하면 그것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컨텍스트(context)'가 있다. '진실'은 컨텍스트를 아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며,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풍부한 이해를 갖게 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진실을 찾아서
나는 교차검증을 좋아한다.

진실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원하기 때문에 가지게 된 태도 또는 노하우이다. 몇년 전 어떤 르포 기사에서 삶을 마무리할 때가 가까운 노인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이 외친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 오직 진실이야!' 나도 같은 마음이다.

진실에 대한 갈증이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다른 매체에서 교차검증 할 수 있었다. 줄리언 반스의 부커상 수상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원제:'The Sense of an Ending')>는 단지 옛 친구가 남긴 일기를 찾아가는 줄거리이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작중 등장인물이 주인공에게 직접적으로 이런 말까지 여러 번 한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실제로 주인공은 그가 경험한 작은 편린으로부터 실제로 일어난 일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고 스스로 만족한다. 즉, 컨텍스트를 모르는 사람(주인공)에 대한 우화이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컨텍스트를 모르고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사람은 컨텍스트의 가치를 알기 어렵다. 모든 사실에 부연을 자세히 전달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무한정 제공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번거롭더라도 사실의 뒷이야기를 찾아가면서 해석하기를 권할 수밖에 없다. 해보면 의외로 재미있을 것이다.

진실은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가지면 되고, 내가 밝혀낸 진실이 중요하다고 누군가에게 주장할 생각은 없다. 나는 가끔 누군가와 공유하면 좋겠다고 판단한 정보를 발신할 뿐이다.

모든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진실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자기만의 견해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내가 바라는 것은 한가지 뿐이다. 위에서 밝혔듯,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흠, 이런 컨텍스트가 있었단 말이지. 나름 재미있군."

언젠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오랜 생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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