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만 듣고나면 살맛이 난다(127)




이 곡만 듣고나면 살맛이 난다(127)
글쓴이 chung7808 날짜 2007/7/7 22시 04분 추천 19 조회 2029

이 곡만 듣고 나면 살맛이 난다(127)

프로코피에프-바이올린 소나타 2번 op.94a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제 각각 다르고 또 아무리 묘하다고 해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앞에서는 그저 망연자실 할 말을 잃게 되는 수가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직원 수는 모두 80여명.

남녀가 각각 절반씩인데, 40여명의 남자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화장실 청소는

내가 8년째 담당을 해 오고 있는데, 최근에 와서 좌변기에 피우던 담배꽁초를 그대로 버리는 직원이 있어, 그 문제 때문에 나는 한동안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었다.




변기마다 큼직한 재떨이를 준비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재떨이에 꽁초를 버리지 않고 좌변기에다 그대로 쑤셔 박아버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는 못된 직원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범인을 잡기위해 하루 종일 화장실 앞에서 지키고 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개선이 되지 않는 이상 하루 이틀도 아닌데 그대로 묵인하고 지나가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고 해서, 나는 묘안을 찾다가 화장실 벽마다, 큼직한 방(榜)을 한 장씩 써서 붙여 놓기로 했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직원들에게 알려드리는 말씀




화장실을 이용하는 직원 중에서는 매일 변기통에다 담배꽁초 하나씩을 버리는

참으로 용감하고 잘난 직원(?)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회사 변기통에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직원은 자기 집 변기통에도 담배꽁초를

그대로 버리고 있는지 그것을 한번 물어보고 싶군요.




회사직원들이 변기통에다 버린 담배꽁초를 명색이 회사 전무란 사람이 매일

변기통 청소를 하면서 끄집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찌 함부로

변기통에다 담배꽁초를 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꽁초를 버리는 사람만 잘 난 사람이고, 버린 꽁초를 매일 아침 청소하면서

끄집어내는 전무는 정말로 못난 사람입니까




그러나 담배꽁초를 버리더라도 이 사실만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담배꽁초를 변기통에다 버리는 사람은 담배꽁초를 버리는 그 순간, 자신의 정신과 몸뚱어리 자체를 담배꽁초와 함께 변기통속에다 그대로 처박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방을 써 붙이고 난 다음날 아침, 화장실 청소를 하기위해 화장실 마다 문을 열어 확인을 해 보았더니 변기통속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성공이었다.




그러나 내가 써 붙여 놓은 방(榜)의 마지막 구절을 범인(?)이 읽었더라면 읽는 순간

머리끝이 쭈뼛 서고 몸이 떨려 볼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그대로 도망을 치진 않았을까 싶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은 담배꽁초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과 몸뚱어리 자체를 꽁초와 함께 변기통에다 그대로 처박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는 협박아닌 협박(?)까지 해 놓았으니 어찌 혼비백산 도망을 가지 않을 수가 있었을 것인가.




변기통 담배꽁초 사건이 완전 해결되고 나서, 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들은

음악은 평소에도 즐겨 듣곤 하는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이었다.

화끈하면서도 개운한 그런 음식을 원할 때는 사람들은 아구찜이나, 매운 함흥식 냉면을 찾듯이, 나는 화끈하면서도 듣고 나면 한없이 머리가 맑아지고 개운해지는 그런 음악이 듣고 싶을 때는 아무 주저함도 없이 프로코피에프(SERGE PROKOFIEV 1891-1953)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찾아듣곤 한다.




이곡은 1943년 8월, 작곡 당시에는 ‘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94' 였는데,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이곡을 바이올린 소나타로 개작해 볼 것을 권유하자 프로코피에프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바이올린 소나타로 개작 함으로써 이제는 '바이올린 소나타 2번(op.94a)이란 이름으로 타이틀을 바꿔달게 되었다.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속에는 질풍노도 같은 격정과(2악장과 4악장)

온화하고 따뜻한 선율(1악장과 3악장)이 함께 공존해 있어, 듣고 나면 마치 음악으로 온 전신을 마사지를 하고 난 것 같은 쾌감과 시원함 마져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부산문화회관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 때, 얼마나 격정적인 연주를 했든지 바이올린의 현이 몇 가닥 끊어져서 연주 내내 끊어진 현이 휘날렸을 정도로, 이 곡은 화끈하면서도 격정적이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면 언제나 해인사 홍류동 계곡 농산정(籠山亭)건너편 길가 바윗돌에 새겨져 있는 최치원의 제석시(題詩石) 한편을 떠 올려보곤 한다.




중첩한 산을 호령하며 미친듯 쏟아지는 물소리에(狂噴疊石吼中巒광분첩석후중만)

사람의 소리는 지척 간에도 분간하기 어렵고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세상의 시비소리 들려올까봐 두려워서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모두 귀먹게 했구나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롱산)




세상의 시비소리 들려올까 두려워서,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모두 귀먹게 했다는

그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없는 이 절창 앞에서 나는 그저 말문을 닫아버리지 않을 수가 없다.




최치원의 제석시는 내 음악 듣는 방법에 있어서도 하나의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

최치원은 세상의 시비소리가 들려올까 두려워서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모두 귀먹게 만들었지만, 나는 한번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세상의 어떠한 시비소리도 내 주변에서 얼씬 하지 못하도록 음악을 시켜 세상의 시비소리를 모두 차단시켜 버리는 것이다.




내가 음악을 듣는 순간만은 오직 음악과 나만이 1;1로 존재할 뿐, 세상의 어떤 시비소리도 내 주변에는 범접이 허용되진 않는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있는 순간만은 나는 이 세상에선 둘도 없는 제왕 아닌 제왕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추천음반: 바이올린:기돈 크레머, 피아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함께 연주한 음반

(그라모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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